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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는 신대륙 최초 발견자가 아니다

엉클 빡쌤 2021.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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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요?

즉, 그것이 사실인지 가짜인지 의문을 가진

적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죠.

이에 이 칼럼에서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든

살아 가면서 듣고 보고 했던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상식 중에서 잘못 된 것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그 첫 번 째 이야기로 '컬럼버스'가 과연

정말로 

신대륙, 다시 말해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최초의 인물인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누구나 의심의 여지가 없이 미 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컬럼버스라고 알고 있지요.

 

2005년 미시간 대학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미국인의 85%는 미 대륙의 최초

발견자는 

컬럼버스라고 답을 한 반면,

단 2%의 응답자들만이 

컬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한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정확하게 대답을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미 대륙에는 컬럼버스가 발견하기 이전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그럼 미대륙에 발 디딘

최초 유럽인은? ]

어쨋든,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딛은

최초의 유럽인은

바이킹 탐험가 리프 에릭슨이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입니다.

에릭슨은 서기 1천년 경 그린란드에서

캐나다의 

뉴펀들랜드라는 곳으로

항해를 했습니다.

 

 

컬럼버스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의 1492년

미대륙으로의 항해로 인해서

미대륙 원주민 인구의

엄청난 다수를 죽인 질병들을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몇 학자들은 거의 원주민 90% 정도

라고까지 하고요.

그리고 그의 미대륙의 상륙은 서구 사회의

'제국주의'로

가는 길을 닦는 초석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컬럼버스는 미대륙에 최초 상륙한

유럽인은 아니었고,

그가 해안을 밟은 것은 오늘날

쿠바, 하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등이 있는 중미 아메리카

해안이었던 것이죠.

그가 계획대로 아시아에는 도착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최초의 미대륙 발견자는 아닐지라도,

그의 항해는

정말 용감한 것이었습니다.

중미 아메리카 지역


{ 유럽의 미대륙

식민지화의 서막 }

그는 당시 유럽에 팽배해 있던

장거리 항해 반대의

경향을 부정하고 미지의 바다,

즉 대서양이라고 하는

극도로 험악한 대양을 목재로 된 배로

네 번이나

항해하는 용감한 개척자이긴

했습니다.

 

1492년경, 유럽의 대부분의 교육받은

이들은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이미

세워진 학설이었죠.  

 

그가 처음으로 발을 디딘

'히스패니올라' 라는 곳은

지금의 하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지점입니다.

거기서 그는 '타이노' 라고 불리는

토착민들을 만나게 되죠.

우호적인 집단으로 그들은 기꺼이 보석,

동물들,

그리고 물품들을 컬럼버스의

선원들과 거래 했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그들은 매우 건장하고

매우 잘 생긴

얼굴들이었다." 라고 씌어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컬럼버스는 그 거래에 그치지 않고

토착민들이 무기도 제대로 안쓰고

그저 순하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을

노예화 하기에 이릅니다.

 

심지어 컬럼버스 자신의 몫을 위한

금을 제대로의

양을 가져 오지 않으면 팔다리를

자르거나 죽여버리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러한 유럽인들의 잔혹한

토착민들에 대한 대우와

감염성 질환의 도입으로,

수십년 간, '타이노' 족의 인구는

떼죽음으로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1499년, 스페인 궁정은

'히스파니올라'에서

벌어지는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의

잘못된 행적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재판 없이 태형을 내린다든지

처형을 하는 것을 포함해서요.

결국 그 지역의

실제 통치자였던 컬럼버스는 체포되었고,

스페인으로

압송되었습니다.

그리고 컬럼버스는 페르디난도 왕과

이자벨라 여왕에게

그 수 많은 혐의가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 후 거의 10여년 동안,

컬럼버스는 유럽의 여러

왕정을 돌아 다니며 아시아로 가는

서쪽 루트를 

개발하기 위해서 많은 비용을

원조해 달라고 로비를

하고 다녔지요. 

1484년에는 포르투갈의 죤 2세로부터

지원을 거절

당하고, 3년 지나 영국의 헨리7세,

프랑스의 샤를르

8세등으로부터 원조를 거절 당합니다.

 

그러다 1486년, 처음엔 거절했던

스페인 왕정으로부터

결국 그의 항해에 대한 원조를

받게 됩니다.

 

컬럼버스가 미대륙의 최초 발견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용감한, 지칠 줄 모르는 아시아

대륙으로의

항해 의지로 인해서, 컬럼버스의 항해는

동서양 간의

동식물, 문화, 사고방식 등

(질병도 포함해서) 교류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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